
인간의 걸음걸이, 로봇의 손길 속에서
걷는다는 행위는 우리 모두가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터득한 움직임이지만, 사고나 질병 이후 다시 배워야 하는 이들에게는 막대한 도전이 된다. 수개월간 지속되는 재활 치료와 좌절을 넘어서야 비로소 걸음걸이의 규칙성이 돌아오곤 한다. 그런데 이제 첨단기술의 시대, 우리가 알고 있는 걷기의 재발견은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고 있다. 인간의 걸음걸이를 관찰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제작된 임상용 로봇들이 점점 더 많은 환자들의 삶에 깃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로봇들은 다리에 힘을 가해 보폭, 고관절의 자세, 무릎의 움직임 등을 미세하게 조정하며 환자들의 균형을 개선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여기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이런 방식이 과연 모든 환자들에게 동일하게 유익할까?
하버드 대학교의 와이스 생체모방공학 연구소(Wyss Institute for Biologically Inspired Engineering)와 스폴딩 재활 병원(Spaulding Rehabilitation Hospital)의 과학자들이 이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시했다. 이들은 로봇이 환자의 다리에 미치는 힘이 환자의 보행 균형을 위협하지 않는 한 걸음 동작을 크게 변경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즉,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한, 인간의 뇌는 로봇의 개입에 저항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보폭은 바뀌지만 발의 높이는 그대로: 뇌의 안정성 우선 전략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이 로봇 외골격을 착용하고 트레드밀 위를 걸을 때, 로봇이 가하는 힘 변화에 따라 보행 자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다. 놀랍게도 참가자들은 보폭의 변화에는 쉽게 적응했지만, 발을 들어올리는 높이는 크게 바꾸지 않았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변했을 때조차도 비슷한 대응 패턴을 보였다.
“중간에 발을 조금 더 들어 올린다고 해서 균형이 무너지지는 않지만, 발이 몸 중심에서 벗어나 피치(보폭)가 달라지면 균형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몸이 그러한 불안정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논문의 공동 저자이자 현재 더블린 대학 조교수인 자코모 세베리니(Giacomo Severini, Ph.D.)는 설명한다.
이러한 뇌의 대응 방식은 생존 전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균형을 잃는다면 넘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발목 골절이나 인대 손상은 물론 더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뇌는 준비된 에너지를 상당히 투자해서라도 균형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 요소(예: 발 높이)는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게 변화시킨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재구성하다
이 연구 결과는 임상 로봇 설계에 대한 흥미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현재의 임상용 로봇들은 걸음걸이의 특정 측면을 조정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균형 유지라는 인간의 본능적이고 신경학적인 우선순위를 제대로 이해하지못한 측면이 있다. 연구진은 “발 높이와 같은 변화를 본능적으로 안정적이라고 느끼지 않으려면, 이를 환자에게 더 균형에 도전받는 위협적인 변화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설계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제안한다.
결국, 우리의 뇌는 걸음걸이를 단순히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기계론적 행동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뇌는 환경과 현재 신체의 상태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걸음걸이의 내부 모델을 만들어낸다. 로봇이 생소한 힘을 가할 때 뇌는 이 모델과 비교하여 그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폭을 수정한다. 로봇이 가한 외부의 힘이 제거되었을 때, 뇌는 이전의 내부 모델로 원상 복귀한다. 이러한 발견은 임상의들에게 “환자가 로봇 치료 과정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걸음이라는 시공간 속의 대화
걸음걸이란 단순히 발과 다리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움직임이 아니라, 뇌와 신체, 그리고 환경 간에 끊임없는 대화로 엮인 협력의 산물이다. 이번 연구는 인간의 뇌가 걸음을 조정하고 최적화하는 방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넓혔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재활 로봇의 설계를 위한 귀중한 지식도 제공한다.
하버드 대학교의 도널드 잉버(Donald Ingber, M.D., Ph.D.)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로봇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함으로써 임상 재활기계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배우는 동시에 우리의 신체 자체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걸음 속으로 들어오면서, 그 속에서 번지는 이야기는 더욱 복잡하고 매력적이게 되었다. 로봇과 인간, 그리고 그것을 중재하는 뇌는 안정성과 유연성이라는 두 가지 존재론적 원칙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단지 재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인간의 잠재력, 그리고 기계와의 공존 가능성에 대한 서곡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로봇이 걷는 법을 배우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 걷는다는 것이 지니는 또 다른 깊이를 배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