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주의의 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법
우리는 흔히 낙관주의를 단순한 무지나 자가당착적인 사고로 치부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까, 아니면 우리가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필수적인 태도일까?
수밋 폴-차우두리(Sumit Paul-Choudhury)의 Bright Side: Why Optimists Have the Power to Change the World는 단순한 긍정 사고의 필요성을 넘어, 낙관주의가 어떻게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그는 저널리스트의 시선으로 역사, 철학, 과학을 넘나들며 낙관주의의 본질을 해부한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불행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낙관적 태도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지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찾다
폴-차우두리는 본인을 스스로 낙관론자라고 밝힌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낙관주의를 깨닫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내의 갑작스러운 세상을 떠남이었다. 누구나 비극 앞에서 낙담하기 마련인데, 그는 오히려 이 사건을 통해 긍정의 중요성을 더욱 강렬히 느꼈다고 고백한다.
사실, 낙관주의는 단순히 ‘모든 것이 잘될 거야’라고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기대하는 마법 속에서 살고 있다. 휴가가 생각보다 덜 즐거울 수도 있고, 삶이 우리가 상상한 것만큼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묻는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생각을 방치하는 것이 과연 더 현명한 선택일까?”
폴-차우두리는 올바른 방식의 낙관주의를 강조한다. 이는 근거 없는 맹목적 긍정이 아니라, 신중한 희망과 실용적인 전망을 갖는 태도다. 공항 관제사가 ‘느낌이 좋으니 문제없겠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 팬데믹이 자기 암시로 사라질 리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가 불확실하더라도, 이를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대비하는 방식으로 긍정성을 활용할 수 있다.
낙관주의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공동의 책임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낙관주의가 단순한 개인적인 태도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하는 가치임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한 비관주의가 아니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유한한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세 가지 핵심 파트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낙관주의의 과학과 심리를 탐구하면서, 왜 인간이 쉽게 비관주의에 빠지는지를 설명한다. 수많은 연구가 이를 뒷받침하는데, 우리는 종종 과거를 재해석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스스로 조정하며 살아간다.
두 번째는 더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이끈다. 때론 낙관주의가 정치, 역사, 종교적 맥락에서 악용되기도 하지만, 그의 논리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낙관주의를 단순한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프로젝트로 본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단순히 희망을 품는 것을 넘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방식의 낙관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여러 역사적 인물들과 철학자들의 사상을 조명하며 우리가 어떻게 낙관주의를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루소와 칸트의 철학에서 배울 수 있는 희망의 윤리적 측면, 그리고 현대 심리학에서 제시하는 현실적인 기대 조절 기법 등을 소개한다.
낙관주의,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
이 책은 결코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폴-차우두리는 자신을 ‘쉽게 집중력을 잃는 신기술 애호가’라고 소개하며, 그의 글은 다소 산만하게 흩어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는 고대 신화 이야기를 하다가 순식간에 양자 물리학으로 넘어가고, 다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하나의 큰 그림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결국,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인간은 타고난 낙관주의자이며, 만약 우리가 더 이상 낙관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가 원래 가진 힘을 잃어버린 것뿐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우린 언제든 낙관주의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 더 나은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비관주의의 시대에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폴-차우두리는 이렇게 말한다. “낙관주의는 더 이상 개인의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함께 가져야 할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