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면
추상적 사고를 하는 기계의 시대
우리는 인간이 당연하게 여기는 능력—추상적으로 사고하고, 계획을 세우며, 사소한 결정에 과도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 능력—이 로봇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종종 잊곤 한다. 우리는 문 손잡이를 돌리고, 냉장고를 열며, 물병을 집어 드는 일련의 행동을 단순한 습관처럼 수행하지만, 인공지능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복잡한 퍼즐이다. 인간은 손쉽게 “냉장고를 연다”는 개념을 이해하지만, 로봇은 수천 개의 픽셀과 무수히 많은 모터 제어 명령을 분석한 끝에야 비로소 단 한 번의 문 열기를 해낼 수 있다.
이제, 브라운 대학교와 MIT의 연구자들이 로봇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연구를 발표했다. 이들은 로봇이 직접 추상적 개념을 구성하고 이를 활용해 여러 단계를 거치는 작업을 계획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인간처럼 환경을 해석하고 필요한 행동을 스스로 조직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연구는,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과 닮아 있다.
로봇의 사고방식: 픽셀에서 개념으로
기존의 로봇들은 하나의 작업을 수행하려면 프로그래머가 미리 정의한 규칙을 따라야 했다. 예를 들어, 로봇이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는 작업을 하려면 “냉장고 문을 연다 → 손을 집어넣는다 → 물병을 집는다” 등의 세부적인 명령이 사전에 입력되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로봇은 단순히 “냉장고 문을 연다”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브라운 대학교의 연구진은 로봇이 직접 주어진 환경 속에서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필요한 개념을 스스로 추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연구에서는 ‘아나테마 디바이스(Ana)’라는 이름의 로봇이 특정 공간에서 다양한 물체—찻장, 쿨러, 켜진 조명 스위치, 그리고 물병—을 탐색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아나에게 문을 열고 닫는 법, 물체를 집는 법 등 기본적인 모터 스킬을 제공한 후,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했다.
놀랍게도, 아나는 반복적인 시도를 통해 환경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추상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문을 열기 위해선 두 손이 필요하므로, 어떤 물체를 집고 있을 때는 문을 열 수 없다는 개념을 배웠다. 또한, 찻장 안에서 물체를 가져오기 위해선 조명이 꺼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파악했다. 이러한 정보들은 단순한 픽셀 데이터가 아닌, 공간과 행동의 관계를 함축하는 고차원적 지식으로 변환되었다.
인공지능의 진일보: 스스로 개념을 정리하는 로봇
이 연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로봇이 만든 지식 체계가 단 126줄의 텍스트 파일로 정리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한한 픽셀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오직 필수적인 정보만을 걸러내고, 그것을 압축된 형태로 저장하는 능력을 획득한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시험이 남아 있었다. 아나는 연구진이 요구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연구팀은 아나에게 “쿨러에서 물병을 꺼내 찻장 안에 넣기”라는 목표를 주었다. 로봇은 즉시 쿨러로 이동해 문을 열었지만 물병을 곧바로 집지는 않았다. 그 대신, 아나는 찻장이 닫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조명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는 원하는 물체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 모든 정보를 토대로, 로봇은 먼저 찻장 앞으로 이동해 조명을 끄고, 다시 쿨러로 돌아가 물병을 집었다. 그런 다음, 찻장의 문을 열고 물병을 집어넣었다.
이 일련의 과정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명령을 따라 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맞춰 스스로 해결책을 도출했다는 점이다. 연구팀이 일일이 단계별로 프로그램을 짜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나는 주어진 목표를 분석하고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냈다. 이 모든 과정이 단 4밀리초 만에 이루어졌다.
기계가 진정한 ‘사고’를 하게 될 날
이번 연구는 로봇이 단순한 명령 수행자를 넘어, 실제로 자신의 환경을 해석하고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즉, 이제 로봇은 더 이상 “프로그래밍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고 사고하는 존재로 진화할 가능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만약 로봇이 인간처럼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없다면, 과연 ‘지능’이라는 단어를 적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그들이 우리처럼 사고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프로그래밍의 결과일까, 아니면 그들에게도 ‘사고’라는 창발적인 능력이 생겨나는 순간일까?
우리는 여전히 로봇 지능의 출발점에 서 있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하다. 이 연구는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기계의 모습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