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다가오는 밤에 — 인간다움에 대한 사색
인간과 기계 사이, 그 무형의 경계 위에서 우리는 어디로 걸어가고 있을까? 기술은 어떤 방향으로 진보해야 ‘진보’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요즘 자주 그런 질문을 혼잣말처럼 뇌 속에 띄워놓고 있다. 마치 흐릿한 별빛처럼 멀리서 깜빡이는 그 물음. 아직 다가가지 못했지만, 등을 돌릴 수도 없는 그런 것.
가디언의 편집위원회가 정리한 고찰 속에서, 나는 기묘한 안도감과 함께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다. 우리가 컴퓨터에게 지시하지 않으면, 언젠가 컴퓨터에게 지시받게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 실리콘밸리의 한 투자가가 던진 경고처럼 보이겠지만, 이는 단지 경고가 아니라 이미 현실로 스며든 생활 속 체감이다.
물론 당신도 알고 있지 않은가, 음성인식 서비스에 대고 세 번째로 “예”라고 말해야만 겨우 인터넷 요금제 하나 바꿀 수 있는 그 나날들. 혹은, 군더더기 없이 미리 짜인 스크립트만 반복하는 상담직원과의 대화에서 어느 순간, 상대가 사람인지 로봇인지 모른 채 전화를 끊었던 그 기이한 침묵.
세상은 더 편리해졌지만 동시에 어쩐지 더 공허해졌다.
자동화의 문턱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사실 자동화가 모든 직업을 없애지는 않는다는 OECD 보고서는 다소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최소한, 그 보고서에 따르면 6개 중 하나의 직업이 사라질 예정이다. 문제는 ‘어떤’ 직업이 사라질지보다, ‘어떤 자리’가 남겨질 것인가다. 진부한 노동—단순 반복, 의미 없는 클릭, 감정이 철저히 제거된 대면 업무. 기계가 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떠안게 될 ‘자투리의 시간’과 ‘파편의 역할’들.
인간을 대체하지 못한 자리가 결국 인간을 깎아내는 환경이 된다면, 그 미래를 과연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계는 점점 더 똑똑해진다. 심지어 인간의 시각 정보와 청각 패턴을 빠르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 ‘인식’은 어디까지나 분류이며, 이해는 아니다. 문제는, 그런 분류마저 인간이 하지 않아도 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도 덩달아 ‘덜 필요한 존재’로 여길 위험에 처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계에게서 배워가고 있는 것들
놀랍게도 나는 우리가 기계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 더 두렵다. 우리는 이미 스스로를 기계처럼 훈련시키고 있다. 점점 묻지 않게 되며, 기다릴 줄 모르게 되고, 감정보다 효율을 중시하고 있다. 스크린에 뜨는 버튼을 아무 의심 없이 누르며 그날의 업무를 끝낸다. 한 남자의 이름을 몰라도, 그의 이메일 필터를 잘 설정하면 우리는 그를 알았다고 착각한다.
그러한 삶에 필요한 기술은 많지 않다. 그리고 슬프게도, 기술은 늘 그러했듯, 가장 최소한의 인간 능력을 요구하는 지점으로 인류를 밀어넣는다.
인간의 미래는 기술보다 더 ‘정치적’이다
그럼에도 희망은 어디엔가 있다.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어째서 어떤 이의 노동은 존중받고, 다른 이의 노동은 기계가 대체해도 되는 것으로 취급받는가? 그것에 대한 결정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가 내린다. 학습, 재교육, 기술 습득—모두 필요하나, 그것이 충분한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
우리가 바라는 ‘보다 인간다운 미래’는 오히려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다. “쓸모없어진 인간”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기 위해선, ‘쓸모’를 결정짓는 체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생산성의 잣대로부터 벗어나, 존엄을 기준으로 조직된 새로운 노동 질서를 우리는 상상해야 한다.
맺으며 — 황혼 속에서 나아갈 길
밤이 깊어간다. AI는 또 한 번의 패치를 거쳐, 더 많은 데이터를 꿰뚫고, 더 자연스럽게 말하며, 더 ‘인간처럼’ 웃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웃음이 결국 인간의 자리를 잠식하는 웃음이 아니라면 좋겠다. 우리가 진정 바라봐야 할 것은 기술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기술에게 어떤 역할을 주고 있는가이다.
기계가 생각하는 사람과,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 사이의 그 얇은 장막 위에서, 느리지만 단단한 질문을 던져야 할 시간. 그 첫 질문을 이렇게 정리해본다:
“지금 당신의 일은, 진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인가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회라면, 우리는 여전히 괜찮을 것이다.